<198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토끼는 달을 보고 울부짖는다②
잠시 몸을 쉬었지만,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 동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다.
지하 호수의 물로 목을 축인 후 출구를 찾기로 했다. 아무리 식수가 있다고 해도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칼이 내뿜는 빛으로 앞을 비추며 지하 동굴을 벽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이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이것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도 모르지만, 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각오는 도적을 찔렀을 때 결심했다.
소녀는 칼을 내밀며 칼날에 비친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고, 언덕을 내려가고, 다시 돌아서 언덕을 오르고, 이를 반복하며 방향도 시간도 감각을 잃은 지 한참이 지났을 때, 긴 오르막길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밖이다...”
소녀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언덕을 다 올라간 소녀의 앞에는 하얗고 작은 빛과 그것을 가로막는 듯한 바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멈출 생각은 없다. 일단 칼을 내려놓고 바위 옆의 흙을 손으로 긁어낸다. 손톱 사이로 흙이 들어가는 불편함도, 손끝과 손톱이 찢어지는 극심한 통증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곳을 벗어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소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빛과 희망이 비례해서 커져갔다. 흙벽이 무너지고 마침내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생겼다.
칼을 집어 들고, 돌아서려는 마음 그대로 기어 나왔다.
눈부신 빛에 무심코 눈을 감았다가 서서히 눈꺼풀을 뜬다. 시원한 바람과 풀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산비탈이었다. 자신이 있던 구멍도 몰랐다면 작은 동물의 굴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해냈다...... 자유다 ......!”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도, 박해하는 마을 사람들도, 잔인한 도적도 없다.
자신의 인생, 이세계 환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선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면 ......”
설마 산속에서 혼자 살 수는 없으니, 우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산의 경사면은 한 발만 내딛어도 무너질 것 같아 자세를 낮추고 주변의 나뭇가지와 발밑의 풀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힘들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전방에 길이 보이자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까지 태어난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본 적도 없고, 근처 지리를 알지도 못하지만, 길을 따라가면 인적이 드문 곳까지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소녀는 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길에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허리를 굽혀 덤불 사이로 모습을 살피니, 길에 있던 것은 인상이 험상궂은 여러 남자들인데, 모두 칼을 들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얼굴이 낯익었다. 마을을 습격한 도적 중 한 명이다.
“못 찾겠네, 그 꼬맹이.”
“애가 혼자서 산을 빠져나왔을 리도 없고, 밤새도록 찾아도 못 찾았다면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 아냐?”
“설령 그렇다 해도 확인하지 않으면 두목한테 맞을 거야.”
역시 도적들이었다. 여기서 발견되면 모든 것이 망가질 것이다.
“어쨌든 찾아보자. 도망치면 위험한 건 우리다.”
그렇게 말하면서 도적들은 수색을 재개하고 덤불에 숨어 있는 소녀를 발견하지 못한 채 길을 가려고 했다.
소녀는 숨을 죽이고 도적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조급한 탓인지, 소녀는 몸을 움직이다가 발밑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고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응?”
소리를 듣고 돌아본 도적 중 한 명과 소녀는 눈이 마주쳤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뛰어오르는 기세로 손에 들고 있던 칼로 도적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가아, 앗!?”
(도망치려면-)
칼을 휘둘러 말 그대로 목의 가죽 한 장만 남기고 베어버린다. 푸른 칼날에 얽힌 붉은 피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진다.
(죽일 수밖에 없다!)
“이 녀석! 도망쳤던 꼬맹이!
다른 도적이 칼을 뽑으려 했지만, 소녀는 그보다 더 빠르게 땅을 걷어찼다.
몸을 숙인 자세에서 달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노리는 것은 언제나 필살. 즉, 참수.
“꺄악!”
“으아아악!”
도적들의 목이 하나 둘 공중을 날다가 처참하게 땅에 떨어진다.
도적들은 순식간에 말 못하는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굴러다니고, 소녀는 그 참혹한 광경 한가운데 서서 거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해냈어...”
주변에는 소녀 외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소녀를 위협하는 사람도 없었다.
몇 분 후, 안정을 되찾은 소녀는 다른 도적에게 발각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자리를 떠났다.
산속 오솔길을 걷다가 운 좋게 개울과 그 근처에 짐승이 살고 있는 듯한 구멍을 발견했다.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소녀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도적 몇 명을 죽였지만, 마을을 습격한 무리들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방금 전의 시체도 언젠가는 발견될 것이고, 수색은 더욱 집요해질 것이다.
“도망쳐도...... 쫓아올 거야.......”
만약 인적이 드문 마을이나 마을로 도망친다고 해서 도적들이 그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도망친 곳이 도적의 습격을 받거나 주민의 손에 의해 도적에게 잡혀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와 마을이 없어졌다고 해서 도적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쫓기게 된 것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도망쳐도 도적에게 쫓기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 다 죽이면 되겠네...”
도적에게 쫓기지 않으려면 도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 간단명료한 해결책이다.
진정한 안식을 얻으려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모두 죽이는 수밖에 없다.
“저 도적을 처단해야만...”
전생의 고향에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라' 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 따르면, 전생의 윤리가 아닌 이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전생에 너무 인간적이었다. 이미 환생한 몸이라면 이 세상의 주민이라는 자각을 가져야 했다.
이 세상의 생명의 가벼움은 어제까지의 삶에서도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때부터 소녀의 산속에서의 살육 서바이벌 생활이 시작되었다.
개울물을 마시고, 주변의 작은 동물과 물고기를 잡아먹고, 때로는 풀과 나무껍질, 벌레를 먹으면서도 생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마을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많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리고 산속을 뛰어다니며 소녀는 베었다. 도적을 발견하면 그늘에서 몰래 숨어들어가 연달아 죽였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소녀는 그 빈약한 몸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가 푸른 칼을 휘둘러 도적의 목을 베었다.
시체를 방치하면 벌레와 병원균이 번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부터 아래는 산속에 묻었다. 단, 목은 시범과 자신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길가에 늘어놓아 노출시켜 놓았다.
그러나 소녀는 그 사실을 몰랐다. 마을을 습격한 도적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에게는 그들의 근절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진정한 안녕과는 거리가 먼, 끝이 없는 수라도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토요미의 나라와 간음의 나라, 그 경계에 있는 기보산. 그곳은 고산이라고 할 만큼 높지는 않지만 낮지도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최단 경로이긴 하지만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험로가 이어진다.
그리고 산에 있는 유일한 마을은 배타적이기는커녕 쫓겨나기 일쑤다. 그들은 옛날의 낙오자 오추도(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무사)의 후예라고도 하고, 도적이라고도 하는데, 그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산을 우회하는 가도가 있기 때문에 양국을 오갈 때는 그 쪽을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기보산 고개를 넘는 길에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목이 즐비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소문이라 보통 사람들은 필요 없는 고갯길은 지나치지 않고 안전한 가도를 이용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겁이 없는 사람이 있는 법. 용기를 내어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기보산 산길을 걷던 그가 고개 부근에서 본 것은 예상보다 많은 수의 생목이었다.
그는 너무도 기이한 광경에 숨을 죽이며 산비탈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를 발견했다.
역광이라 뚜렷한 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체격은 분명 작은 체구였다. 원숭이 같은 짐승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몸을 굽히지 않고 곧게 서 있었고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 같은 그 그림자가 바로 이 참상을 만들어낸 것임을 직감했다.
그 무언가가 손에 든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살기를 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기어가는 몸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만약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 후 다른 사람이 방문했을 때에도 고갯마루의 생목은 여전히 건재했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목을 살펴보니 모두 도적의 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끔찍한 광경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이를 저지른 자의 의도도 알 수 없었다. 도적에 대한 의분으로 해석하기에는 방법이 너무 잔인했다.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기보산을 기피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참수 동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