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선혈신락(鮮血神楽)⑪
용의 가슴은 텅 비어 있었고, 루리에 의해 열린 그곳에 루카가 서 있었다.
고개를 든 류카는 눈을 붉게 물들이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블라드 3세의 원한에 찬 외침을 내뱉었다.
"밉다! 같은 자신인데도 군주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저 놈이! 저놈의 후손이! 백성이! 나라가! 모든 것이 증오스럽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을 얻어 나라를 지키고 지배 체제를 굳건히 했다. 한편으로는 죽기 직전의 상태로 독극물 늪에 빠져 죽지도 못하고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만약 이 사람이 남의 일이었다면 부러워도 미워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었다. 둘로 갈라진 영혼의 한 조각이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그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왜 내가 아니었을까.
나뉘는 일이 없었더라면, 차라리 그대로 죽었더라면 이런 감정을 갖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문과 그 수천 배의 원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자”
하지만 루리는 어린아이의 떼쓰기에 끌려가듯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방해하지 마라!”
류카가 격앙된 채 팔을 휘두르며 손바닥에서 사람을 삼킬 수 있을 정도의 불덩어리를 내뿜었다.
“그런 건 그만둬라!”
하지만 루리는 냉정하게 말하면서 불덩어리를 칼 한 자루로 베어 버렸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온의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방해하면 너까지 죽여 버리겠다!”
류카는 여전히 울부짖으며 주변에 귀신불을 띄우고 손에 화염창을 만들었다.
고음의 작은 소리를 내며 루리의 검이 칼집에 들어간다. 동시에 루카의 주변에 있던 모든 불길이 터지면서 사라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루리가 베어버린 것이다.
“자, 류카 님,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이놈의 하인이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아니, 그러니까 류카 님, 의식이 있으시죠?”
류카의 말을 가로막으며 루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류카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숨길 수 없다는 생각에 루리의 지적을 인정했다.
“오르는 도중에 귀신춤에 류카님의 버릇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어서 직접 대면하고 확신했습니다”
“설마 마법의 버릇으로 눈치채게 될 줄이야.”
“장식으로 몇 년 동안 모신 것도 아니니까요”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류카에게 루리는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
“그래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조금 우세할 뿐이지 완전히 제압당한 것은 아니야. 올라가는 너를 향한 마법도 내가 주도권을 잡았지만, 공격 자체를 막지는 못했어. 아래쪽에서는 시귀가 솟아나고 있고, 에리카 씨가 어떻게든 막아주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해”
사실, 용의 뿌리에서는 시귀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탈리아와 타츠마사는 아직 거리가 멀고 싸울 여력도 없고, 아카네는 용의 목을 봉인하고 있어 움직일 수 없다.
유일하게 에리카만이 대항하고 있지만, 다수를 상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류카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녀와 그 안에 있는 지팡이베 마모루가 블라드 3세에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매달려도 용의 목을 떨어뜨린 틈을 비집고 살짝 기울이는 것이 한계이며, 그만큼 블라드 3세는 강대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지펀이엔과 타츠마사는 류카의 몸에 그를 봉인함으로써 그 사이에 그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그 기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블라드 3세가 류카와 츠에베 마모루를 제압하고 몸을 지배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시귀와 용과 함께 간음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방금 전 류카가 말한 것은 내면에 끓어오르는 블라드 3세의 본심 그 자체였다.
“내가 죽으면 블라드 3세도 함께 갈 수 있겠지. 루리,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며 루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양손을 크게 벌렸다.
루리는 왼손을 칼집에 대고 류카는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거절합니다!”
하지만 루리의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오래도록 흐르고 잠시 묶여, 물갈퀴로 묶여라”
루리의 노래와 함께 흐르는 물이 밧줄처럼 류카의 몸을 감싸안고 움직임을 봉쇄했다.
“루리,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일에 류카는 당황했다.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각오를 하고 있는데, 왜 구속하는 걸까.
“시스이라는 이름은 제가 함부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코토히메 님께서 지어주신 거짓 이름이었죠?”
루리는 류카의 말을 무시하고 추억을 회상하듯 애도의 『지수(止水)』 를 바라보았다.
『지수(止水)』는 기보산에 봉인되어 있던 요검으로, 원래는 그 산에 사는 사람들이 봉인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역할은 잊혀졌고, 우여곡절 끝에 그 백성의 후예인 루리의 손에 넘어간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멸을 죽이는 능력은 사용자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류카가 루리를 보호한 직후, 코토히메는 이 검에 거짓 이름의 봉인을 걸어주었다. 이로써 불멸의 살인을 봉인하는 동시에 루리의 목숨이 소모되는 것을 막았다.
불멸의 힘을 사용하려면 진정한 이름을 불러 봉인을 풀어야 한다.
앞으로 루카를 죽이려면 봉인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루리, 안 돼요! 나를 베어주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루리가 하려는 일을 눈치 챈 류카가 소리쳤다.
하지만 루리는 듣지 않고 칼자루에 손을 얹고 깊숙이 허리를 숙여 합기도 자세를 취했다.
“유수의 외곽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 시니미즈(死水)」"
진정한 이름을 불렀을 때 '사수'의 봉인이 풀리고, 칼집의 구멍에서 검붉은 심연의 색이 흘러나왔다.
“류카 님,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를 이제야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안 돼요! 저는! 이런 짓을 시키려고 도와준 게 아니예요!”
“우라토 마모루류, 교쿠텐(玉天)”
루카의 제지도 듣지 않고 루리는 '사수'를 뽑아냈다.
류카에게 츠에베 마모루가 빙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류카가 열두 살이 되던 해의 장변제에서 카구라무이가 끝난 직후에도 빙의하여 타츠마사에게 자신의 반신 부활과 그 대처법을 알려주었다.
타츠마사는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만, 츠에베 마모루가 말하는 상황이 지하 동굴에 봉인되어 있던 블라드 3세의 상황과 일치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빙의된 류카도 마찬가지였다.
류카 역시 간음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루리였다.
평소 루리의 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류카에 대한 충성심은 가까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루리가 류카를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설령 류카 본인이 납득하더라도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타츠마사는 이 사실을 코토히메와 우라토 가문의 적자인 류카의 오빠이자 우라토 가문의 수장 진쿠로에게만 설명했다.
당연히 혼란은 있었지만, 각자의 입장과 책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받아들여졌다.
이후 류카의 요청은 가능한 한 실현될 수 있게 되었다.
사페리온 왕국 유학도 그녀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학 생활 2년 동안 류카는 알찬 나날과 소중한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올리비아 일행을 초청한 것은 죽기 전에 그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용정이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변제 당일, 류카는 미련 없이 죽음의 땅으로 향했다.
아니, 아쉬움은 있다. 자신이 죽으면 모두가 슬퍼할 것이다. 특히 루리는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어쩌면 원망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
(나는 루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겠구나 ......)
순간 떠오른 생각을, 웃으면서 부도덕한 생각이라며 떨쳐버린다.
(루리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아버지에게 베어 달라고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군)
원래대로라면 루카를 베는 것은 전속 우라토 수호자의 역할이지만, 그녀는 반발할 것이다.
설령 실행한다고 해도 오랜 세월 동안 마력과 원한을 쌓아온 블라드 3세는 순수한 검술로는 죽일 수 없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요도의 진정한 힘을 개방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것은 류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논의 결과, 블라드 3세를 끌어들인 류카는 타츠마사가 베기로 했다. 이는 검술 실력이나 흡혈귀의 격도 있지만, 그는 국왕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대가로 부모로서 자식을 죽인 죄를 짊어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카구라무이를 끝내고 강림한 츠에베 마모루는 류카에게 반강제적으로 몸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이 역시 류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그녀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츠에베 마모루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이제 남은 것은 지하 동굴에서 블라드 3세를 끌어들여 타츠마사에게 베임을 당하는 것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왜!?)
하지만 거기에 루리가 달려왔다.
게다가 나탈리아라는 협력자까지 데리고.
두 사람이 자신을 생각해서 한 일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탓에, 끌어들인 블라드 3세를 제압하지 못하고 삼수룡의 현현을 허용해 버렸다.
분노와 증오의 격류에 휩싸인 류카와 츠에베 마모루는 어떻게든 저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삼두수룡에 의해 류마사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각자의 의도는 모두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나탈리아와 함께 합류한 아카네와 에리카가 용의 목을 날림으로써 블라드 3세에게 틈이 생겼고, 육체적 지배권은 두 사람의 우세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하지 않아, 올라오는 루리를 향한 마법과 발밑의 시귀 발생은 막을 수 없었다.
루리가 오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총에 맞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고, 어떻게든 궤도 제어를 방해해 직격만 피했다.
하지만 그 덕에 루리는 결국 루카에게 도달하고 말았다.
블라드 3세의 말투를 흉내 내며 한 번이라도 퇴각시키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게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한다.
뱀파이어의 격이 너무 높은 블라드 3세를 죽이려면 그 대가로 루리의 목숨을 빨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이 류카라면 검을 풀어줘도 루리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리고 루리는 검의 진명을 개방한다.
그것은 순환에서 벗어난 존재를 끌어당기는 종말의 누룩이 되어 죽은 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자양분이다.
"우라토 마모루류, 교쿠텐(玉天)"
“안 돼, 안 돼!”
류카가 거절의 비명을 지르지만, '사수(死水)' 는 멈추지 않고 내리꽂혀 불멸의 생명을 끊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