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당신에게
사페리온 왕국의 동쪽에 위치한 요소항은 레이바나나국과 국교를 맺는 관문으로, 이곳에서 왕도로 향하는 길도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벗어난 산길의 관리는 아직 불완전하고, 마을을 벗어나면 치안이 좋지 않은 곳도 많다.
그런 길 한가운데를 한 소녀가 걷고 있었다.
짧은 길이의 진홍색 기모노를 입고 노을빛 머리카락을 단발로 묶고 비녀를 꽂은 작은 체구의 소녀다. 작은 보자기를 짊어지고 발걸음을 재빠르게 옮기는 모습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듯하다.
옷차림으로 보아 레이바나국에서 왔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길은 치안이 좋지 않다. 그리고 레이바나국과 국교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나라 물건은 사페리온 왕국에서는 여전히 희귀하고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바나국의 의상을 입은 소녀가 혼자 있으면 어떻게 될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길을 가로막는 도적 몇 명이 나타나자 소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가씨, 좋은 옷을 입고 있잖아.”
“얌전히 있으면 나쁜 짓은 안 할 테니까.”
칼을 뽑고 위협하는 도적들에게 소녀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멈칫거리고는 있지만, 그 눈에는 도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이봐, 듣고 있는 거냐!”
위협에 반응하지 않는 소녀에게 한 명이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그의 몸에 무수한 붉은 선이 뻗어나가더니 그대로 빙글빙글 돌면서 무너져 내렸다.
“오월 파리 같네요. 벌레보다 못한 놈들이네요.”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거기에는 분명 살기가 담겨 있었다. 고개를 든 소녀는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여덟 개의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도적들에게 소란이 일었고, 그들은 자신이 사냥감을 잘못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들은 이미 거미줄에 얽히고설킨 채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소녀가 팔을 휘두르자 몇 번의 번쩍임과 함께 도적들은 그 자리에 고깃덩어리와 피가 튀며 쓰러져 버렸다.
“정말이지. 이쪽은 조금의 시간도 아까운데.....”
소녀는 흙 마법으로 땅을 조작해 도적들의 시체를 땅에 묻어 버렸다. 애도가 아니라 역병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일어난 모든 흔적을 지운 소녀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들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그 멍청이가 또 제멋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목적지는 멀고도 멀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소중한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바멜 마을에서 일어난 소동이 있은 지 며칠 후의 일이었다.
“저기, 정말 괜찮아?”
“틀림없어. 적어도 아리아 씨의 동굴에서 가까울 거야.”
바헨 수해 안쪽, 미르와 대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목적은 수해 안에 있는 가드랜드 저택이다.
얼마 전 바멜 마을 경비대가 뚫린 사건에 대해 미르는 나탈리아가 무언가 알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그녀가 마을에 왔을 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이렇게 수해 안까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은폐의 결계로 둘러싸인 가드랜드 저택의 소재는 미르도 대니도 모르고, 나탈리아 일행의 지금까지의 언행으로 보아 아리아의 지하 동굴 근처일 것이라 추측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그 이상의 단서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 제인 언니가 이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했어요.”
“그럼 나탈리아를 가만히 놔두라는 거야? 분명 나탈리아도 연루되어 있을 거야.”
“그건 나도 걱정이 되긴하지만 말이야.”
경비대에 피해를 입힌 범인 중에는 오필리아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었다는 정보를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오필리아가 어떤 존재이건 간에, 만약 나탈리아가 그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미르와 대니 모두 나탈리아의 친구로서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다. 하지만 대니는 오필리어와 사귀었던 제인으로부터 제지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을 주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곳에 집이 있을 것 같지 않아. 깊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지도 않고, 나도 이 근처에 와본 적 있어.”
“다른 단서도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불평하지 말고 제대로 찾아봐.”
그런 대화를 나누며 숲 속을 둘러보는 두 사람. 그곳에 덤불이 흔들리며 커다란 그늘이 나타났다.
“앗!”
즉시 경계 태세를 취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음, 너희들은 분명 나탈리아의 친구였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찢어질 듯이 꽉 찬 가방을 짊어지고 나타난 펀이엔이었다.
“아, 당신은”
“펀이엔 씨였죠. 나탈리아는 있나요?”
“그 녀석은... 지금은 없다.”
펀이엔이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한 대답은 미르의 예상대로였다. 저 정도의 큰 짐, 수납공간을 잘 다루는 나탈리아가 있다면 그녀가 맡겼을 것이다.
“외출 중이라면 언제쯤 돌아오나요?”
물기 어린 기세로 다가오는 미르의 질문에 대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상대는 인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용인이다. 자칫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나탈리아, 또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거 아닌가요?”
“...”
펀이엔은 입을 꾹 다물고 미르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본다. 이에 미르도 용인 상대에게 전혀 겁먹지 않고 눈을 돌리지 않는다.
“물어보면 어떻게 할거지? 그 녀석의 그 짐을 함께 짊어지고 갈 건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겠어요. 나탈리아의 고민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고, 나탈리아 자신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친구로서... 한 대 정도는 때려줄게요.”
미르는 한 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큭, 하하하하하!”
미르의 말을 듣자 펀이엔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 말이 맞아! 그 녀석은 주변 사람들한테 한 대 얻어맞는 게 낫다!”
펀이엔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눈가에 눈물을 흘렸다. 한바탕 웃은 펀이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르와 대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너희들한테도 얘기해 줄까?”
그렇게 말하며 판빙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후 나탈리아가 어떻게 된 건가.
“응, 때릴꺼야.”
이야기를 들은 미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나도 한 대 때려주고 싶어졌어.”
아까까지만 해도 당황스러워하던 대니도 돌변해 동조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남겨진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거잖아요!”
미르의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펀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녀석들과 함께라면'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그런 면이 있었어, 그 녀석.”
“그렇게 결정되면 빨리 준비해야지.”
“그래, 맞아.”
두 사람은 발걸음을 돌렸고, 미르는 기억을 떠올린 듯 걸음을 멈췄다.
“아, 펀이엔 씨, 올리비아에게 전갈을 부탁합니다.”
“흠, 뭐라고?”
“빨리 안 오면 우리가 올리비아의 몫까지 해줄 거라고요.”
“음, 확실히 승낙했다.”
펀이엔이 흔쾌히 승낙하자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바멜 마을로 올라갔다.
대니와 미르의 커플링은 현재로서는 계획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