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성마(聖魔)개입
성 그란루체 제국의 군의는 혼란스러웠다.
연합군만 상대한다면 벨로모트 공화국군과 제국군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개입자의 존재가 제국군 기사단장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검은 갑옷』이라 불리는 적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나...”
“아마도 인류가 아닌 마족인 것 같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매번 요새를 파괴한 뒤에는 소식이 끊겼으니까요”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적을 쫓아갈 방법이 없지 않나요?”
“요새를 파괴당하고 군대도 궤멸된 상태에서는 어느 쪽이든 불가능하겠지”
“다만, 움직임으로 보아 연합에 유리하긴 하지만 연합군에 속해 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적인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 그보다 전이 마법진만 파괴되고 있는 게 더 문제 아니야? 그건 최중요 기밀이야.”
“그나저나 전이를 이용하던 통신망도 엉망진창이군. 전이 마법이 도입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갔어. 연합군의 침공은 아직 깊지 않지만, 그 검은 갑옷이 그쪽을 노린다면...”
“게다가 벨로모트 국민으로부터도 말이죠.”
개전 전이라면 모를까, 현재는 벨로모트 공화국 곳곳에서 그란루체 군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와 벨로모트 공화국에 주둔하는 그란루체 군은 반쯤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본국에서 원군을 보내든 벨로모트에서 철수하든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단장들은 눈썹에 주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엘프족이자 성그란루체국 제12기사단장 바실리오 바소콜지오는 조금의 조바심도 없었다. 제국 건국 이래로 왕족을 섬겨온 가장 오래된 기사단장이자 동시에 블랑 교구의 주교이기도 한 바실리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단장들을 꾸짖었다.
“이런, 성 그란루체 제국이 자랑하는 기사단장님들이 그런 일로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이 부족합니다. 제3기사단장 레온티나 단장은 이미 최전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헌신에 빛의 신 브란세스 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의 고향인 엘프 마을은 과거 사페리온 왕국에 빼앗긴 땅이다. 세계수가 우뚝 솟은 듯한 이 땅은 엘프의 성지이자 동시에 블랑교의 성지이다.
(빼앗긴 고향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애초에 벨로모트의 꼭두각시화는 바소콜로지오 단장과 교회의 성지 탈환파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일 텐데)
(성지 탈환은 우리도 숙원이다. 그러나 현재는...)
(쳇, 늙은이가)
단장들은 각자 생각하는 바가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꺼려했다.
버지리오와 교회, 더 나아가 국내 굴지의 대상회인 플라티보로스 상회도 이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이 보이지 않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지만, 버지리오님, 이 정도 피해를 입었다면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비록 선전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교회가 선택한 용사들이 패배한 것도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적에도 버지리오는 동요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인력을?”
“물론, 교회 기사입니다.”
“교회 기사단을 동원!?”
“국가 간의 전쟁에 교회가 기사를 파견하는 건가요!”
벨로모트 공화국의 속국화도 연합군과의 전쟁도 어디까지나 성 그란루체 제국이라는 한 국가의 것이다. 교회는 용사를 파견한 것은 맞지만, 거기까지로 그쳤다.
교회 기사단이 파견되면 교회의 개입은 본격화될 것이다.
“성지 탈환은 교회의 숙원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늦어진 것에 대해 주교로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버지리오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용사들도 치료를 받고 다시 전장에 나설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검은 갑옷을 쓰러뜨려 주실 것입니다.”
드디어 다른 기사단장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면 교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그란루체 요새. 이곳은 파괴한 후 임시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그 정원으로 내려와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마력 외장을 해제하자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갑옷과 날개가 터지면서 사라졌다.
이제 한계다.
무릎을 꿇는 동시에 가슴의 마도핵을 보관하고 있는 유지보수 문을 연다. 내부에서 발생한 마력 가루가 힘차게 뿜어져 나와 그 자극에 온몸이 떨린다.
마도핵의 최종 리미터가 풀리면서 마력의 정제량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마력 가루가 쌓이는 양 또한 늘어난 것이다.
넘쳐흐르는 마력 가루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잠시 후, 드디어 진정이 되었다.
“꽤나 멋진 모습이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뒤돌아보며 수납공간에서 꺼낸 마총을 겨누었다.
그곳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마티아스 ...”
한 명은 잉글라우로 마법학교에서 올리비아의 동급생이었던 마티아스 후야드였다.
“저기요, 선생님, 옷 좀 입어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다른 한 명도 올리비아의 동급생, 이름이 로저였던 것 같다.
“둘 다, 왜 여기 있는 거야?”
내가 마총을 내려놓고 수납공간에서 적당한 천을 꺼내서 입혀주면서 물었다. 그러자 마티아스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토해내듯 말했다.
“왜긴. 우리 군의 전투에 끼어드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추적해 왔기 때문이지?”
“이, 이봐, 마티아스,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잖아요. 아군 피해도 없고, 그 정체가 나탈리아 선생님이라면 안심해도 되지 않겠어요?”
“뭐가 안심이냐? 나탈리아 선생님은 괴물이라고. 만약 그것이 국가 간의 전쟁에 개입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뻔한 일이야.”
마티아스의 말도 지극히 타당하다, 나는 인간이 아닌 마도 인형이고, 마물이나 도구로 취급받는 존재다.
토벌을 당해도 불평할 수 없다.
원래는 올리비아가 소유한 종마이지만--
“사페리온 왕국의 국민인 올리비아의 종마로 행동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 모습으로는 단독 행동, 그것도 종마 증명 보주조차 없는 것 같네요.”
그렇다. 종마 증명 보주는 저택에 두고 왔다. 사적인 감정으로 행동한 이상, 올리비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탈리아 선생님,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건가요? 설명해 주시면 우리 군에 도움이 된다면 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로저는 나를 변호해 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사정을 말할 생각이 없다.
오필리아의 복수심도, 내 반신에 대한 혐오감도 모두 사적인 감정이다.
올리비아의 마음까지 배신하고 내 마음대로 한 거야. 그것을 외부인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어설프게 속이려 해도 마티아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
내 침묵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마티아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 이봐, 마티아스, 이대로 돌아갈 생각이야!?"
“말할 생각이 없다면 시간 낭비야.”
“그런... 나탈리아 선생님은 학생 시절에 많이 도와주셨잖아!”
“지금 우리는 군인이야! 그리고 만약 그녀가 그냥 악마로 행동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거다.”
“아, 이런! 나탈리아 선생님, 더 이상 이상한 짓은 하지 말아주세요!”
로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마티아스의 뒤를 쫓아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잔해에 기대어 몸을 의지했다.
“꽤나 멋진 모습이구만.”
잔해의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거기서 세 기둥의 마족, 사슴뿔의 집사 플루트, 늑대귀의 수녀 마르티나, 잿빛 날개를 가진 군인 무루루아가 나타났다.
“덕분에 전이 마법진이 있는 요새는 순조롭게 무너뜨리고 있어.”
벨로모트 공화국 내에서 내가 전이 마법진이 있는 요새만 공략할 수 있는 건 이 녀석들이 그 정보를 알려줬기 때문이야.
전이 마법진 기술은 도미닉과 전생의 나 혼조 주와 연결되어 있다. 한 군데씩 무너뜨리면 언젠가는 녀석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나오는 곳을 죽여버린다.
“전이 마법진이 있는 요새를 알려준 것은 어디까지나 보상의 선지급이야. 우리의 목적도 잘 수행해 주길 기대할게.”
이 녀석들의 목적은 마족과의 계약을 방해하는 기술을 가진 프라티보로스 상회를 무너뜨리는 것인데, 그 기술의 응용으로 마족은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거점 파괴를 의뢰한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대가로 전이 마법진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너희들이 알려준 플라티보로스 상회의 거점은 제대로 파괴했지?”
지금 벨로모트 공화국 내부는 상당히 치안이 좋지 않아. 각지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섞여 상회 거점을 무너뜨리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어렵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어. 앞으로도 그 결의와 살의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 말과는 달리, 미야하라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기대나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플라티보로스 상회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도 내가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추가로 계약하면 힘을 실어주겠지만.”
“더 이상의 손길은 필요 없다.”
잘못 계약하면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의 도적처럼 동료나 친구의 영혼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이만 가자.”
말만 하고 미시라시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휴식은 끝났다. 다음 목표로 향한다.
“--”
짧게 외치자 창백한 빛과 함께 압축된 마력이 갑옷과 날개를 형성했다.
기다려라, 도미닉, 전생의 나 혼조 주.
반드시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