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설 - 연재/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200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NioN 2024. 12. 5. 20:11

선혈신락(鮮血神楽)⑥

 
 

 어두운 숲 속, 두 마리의 괴물이 달려온다.
 한 마리는 붉은 동색의 작은 거미. 무거워 보이는 금속성 체격과는 달리 경쾌하게 튀어오른다.
 한 마리는 낫을 든 거대한 꽃이다. 무수한 뿌리를 벌레 다리처럼 움직이며 거대한 몸체를 반쯤 끌며 힘차게 질주한다.
 앞으로 꿈틀거리는 무수한 그림자. 그것은 이 숲에 출몰하는 시귀다. 그들은 둘을 발견하자마자 달려든다.

 거미는 금속 실을 능숙하게 다루고, 꽃은 촉수 끝에 달린 칼날과 용해액으로 다가오는 시귀떼를 막아낸다.
 시귀에게 물린 자는 시귀가 된다. 보통의 생물에게는 한 번의 찰과상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금속 외피를 가진 거미는 말 그대로 이빨이 없고, 꽃도 물리는 순간 스스로 잎을 절단하여 시귀화를 막는다.

 그리고 여러 마리의 시귀를 쓰러뜨린 두 마리의 몸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두 마리는 마물로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장변제에서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내려가면 노출된 암벽이 드러난다. 하지만 길은 계속 이어져 완만하지만 더 지하로 향하고 있다.
 그 지하도를 따라가던 용정과 블라드 3세는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느꼈다.

“벌써 따라잡혔구나.”

“발소리는 하나다. 아마 둘 중 한 명이 남았겠지.”

 타츠마사의 말대로, 두 사람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따라잡은 것은 루리뿐이었다.

“당주 님! 블라드 3세!”

 어둠 속에서 나타난 루리는 직전 제지했지만, 그대로 베기 직전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실제로 그녀는 허리춤에 칼을 걸고 있었고, 맞받아치려던 류마사토도 자신의 칼에 손을 뻗었다.

“잠깐, 시간이 아깝다”

 금방이라도 칼을 뽑으려는 두 사람 사이에 블라드 3세가 끼어들었다.

“루리, 내가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얌전히 있어라”

“......알겠습니다.”

 루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칼에서 손을 뗐다. 블라드 3세에게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류카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럼 갈까?”

 타츠마사는 루리를 경계하며, 루리도 불만을 품은 채로 앞서가기 시작한 블라드 3세를 따라갔다.

“자, 우선은 매년 발생하는 시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루리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라드 3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시작했다.

“이건 공표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시귀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물이 아니야.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아먹힌 자다.”

“뭐라고!?”

 루리는 그만 발걸음을 멈출 뻔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간음국의 정점이자 흡혈귀의 일족인 우라토 가문이 시귀의 발생과 무관할 리가 없다.
 그리고 우라토 수호자는 다른 신하나 하인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으며, 류카를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지탱해 온 자신이 몰랐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자들이 겪게 되는 결과 중 하나다. 피를 빨렸다고 해서 시귀나 동족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

 루리 자신도 우라토 수호자로서 류카를 섬기는 과정에서 그녀의 흡혈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바쳤다. 그 때마다 목에 송곳니를 들이대고 있다.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자는 모두 시귀가 된다면, 루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아니라 피를 매개로 대상의 영혼을 흡수해 사신으로 부릴 수 있는 것이 시귀다. 그리고 시귀는 육체가 죽어도 주인에 의해 재생, 소환할 수 있어. 방금 눈앞에서 보여줬지?”

 블라드 3세가 말하는 것은 바깥 제례전에서 소환한 시귀무사들을 가리킨다.

“저 녀석들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의 신하들이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엔 꽤나 과감한 인형들이지 않나.”

 시귀 무사들은 모두 생전에는 한 손가락하는 무예가였고, 그들을 혼자 상대하고 있을 나탈리아에게 블라드 3세는 유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흡혈할 때 합의 하에 계약을 맺으면 생전의 의지가 남지만, 흡혈귀가 강제로 지배한 시귀은 의지가 없는 시체 인형이 돼지. 바깥에서 솟아나는 시귀는 후자다. 그리고 어느 쪽의 시귀든 그 송곳니에 물린 자는 의지가 없는 시귀가 된다”

“그럼 그 의지가 없는 시귀는 블라드 3세가 만들어낸다는 말씀이신가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마라.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차근차근 설명해 줄테니”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 한마디에 루리의 눈썹 사이에 새겨진 주름이 깊어진다.

“전생이라고 지금의 내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너희와 같은 세상에서 죽은 나는 이 세상에 환생했어. 그리고 우라토 츠에베를 수호하는 신을 자처하며 우라토 가문을 일으켜 사페리온 왕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사룡과 대결을 벌였지.”

 블라드 3세, 아니, 츠에베 마모루가 말한 것은 우라토 가문과 간음 나라 역사의 일부다. 우라토 가문을 섬기는 루리는 물론이고, 시세이의 아이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사룡이다. 간음 나라에는 천 년 전에 처치된 여덟 개의 목을 가진 거대한 뱀의 마물이 토해낸 독 늪이 있다. 사룡은 그곳에서 출현했다”

“대룡의 부활, 혹은 그 권속이라고 하더군요”

 장황한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루리는 현재 통설에 대해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대처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저건 분명 독 늪에서 나온 건 맞지만 사룡과는 무관한 존재였어. 물론 직접 대면한 순간에야 깨달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츠에베 마모루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자책감이 묻어났다.

“이제 알겠어.”

 츠에베 마모루의 말대로 동굴 앞쪽에 붉은색으로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곳은 열린 지하 동굴이었다. 신기하게도 루리가 칼을 얻었던 지하 호수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곳과 달리 바닥을 채우고 있는 것은 깨끗한 물이 아니라 검붉게 빛나는 맹독의 늪이다. 중앙에 있는 것은 작은 섬이 아니라 늪에서 뻗어 나온 독액 덩어리에 사지를 붙잡힌 중년 남성이 분노의 표정으로 멈춰 서 있었다.
 루리는 그 얼굴에서 전생에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인물을 다룬 책이나 웹 사이트에서 본인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전생의 그 사람. 블라드 3세 그 자체다”

“아니, 잠깐만요! 그럼 당신은 뭐예요!”

 당황하는 루리에게 류카에게 빙의한 츠에베 마모루는 침착하게 대답한다.

“나도 블라드 3세다. 나는 전생에 죽어서 이 세상에 환생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엄밀히 말하면 죽기 직전의 상태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영혼의 절반은 죽어서 환생했고, 살아있던 절반은 독의 늪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여생 말년에 저쪽은 깨어난 것이다. 독 늪의 독기(毒瘴氣)를 흡수해 흡혈귀의 특성을 지닌 사악한 용, 흡혈룡이 된 거지.”

 이 세계로 전이된 블라드 3세는 말 그대로 반쯤 죽은 상태였다.
 그의 영혼의 절반은 죽어 육체를 떠나 이 세계의 윤회의 고리를 타고 환생하여 우라토 츠에베 마모루가 되었다.
 블라드 3세의 몸과 나머지 반쪽의 영혼은 독 늪에 잠식되어 의식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죽지 않고 점차 독과 독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의 늪에서 잠을 자면서 힘을 축적하고 그 몸을 변질시켜 나갔다.
 독 늪에 빠진 블라드 3세가 깨어났을 때, 흡혈룡으로 나타난 그 위용에 보는 이들은 전율했고, 곧바로 우라토 군이 출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지휘를 맡은 것은 물론 우라토 츠에베 마모루였다.

“영혼이 공명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들은 대치하는 순간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서로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한때 동일한 존재였던 두 사람은 재회했고--........

“그리고 서로를 죽였다”

“저기, 자기 자신끼리 맞죠?”

“그래서 그렇기에다.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자신과 같은 존재라니, 기분 나빠서 어쩔 수 없지. 뭐, 이건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루리 입장에서는 서로를 죽이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망설임 없이 행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츠이베 마모루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와 저것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나에게는 국가가 있고, 신하가 있고, 백성이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들도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저놈은 나뿐만 아니라 가은의 나라 전체를 멸망시키려 했다. 밖에 떠다니는 시귀들은 그 당시의 희생자들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우라토 군의 소모도 심했고, 민간인에게도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전생에 강대국에 휘둘리면서도 나라를 지켰고, 환생 후에도 국왕으로서 분투했던 장辺守에게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같은 존재이기에 승산이 없었다. 나는 고육지책으로 저것을 이 독 늪에 봉인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츠에베 마모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봉인되어도 계속 힘을 축적하고 있었어. 만약 깨어난다면, 이제는 더 이상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스스로 봉인을 깨뜨릴 거야. 그렇게 되면 이번엔 가음의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하지만 흡혈룡이 된 저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지.”

 츠에베 마모루는 독 늪의 기슭까지 가더니 몸을 가볍게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독 늪 위로 날아올라 과거의 자신과 마주했다.

“뱀파이어를 죽이는 방법. 그것은 다름 아닌 흡혈귀의 흡혈로 영혼을 흡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를 빨아들이는 쪽이 상대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우라토 가문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이라니....... 설마!”

 츠에베 마모루의 목적을 눈치 챈 루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류카는 그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소질, 이보다 후세에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지. 지금 하지 않으면 저 녀석은 더 강력하게 부활할 거야.”

“그런 소리!”

 뛰쳐나가려는 루리 앞에 타츠마사가 가로막았다.

“내가 류카의 몸으로 그놈의 피를 빨아들여 영혼을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 타츠마사가 죽일 거다”

“당주 님! 진심입니까!

“물론이지.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다.”

 그것은 타츠마사 님이 자신의 딸을 손에 넣는 것에 다름 아니다. 츠에베 마모루에게 있어서도 류카는 자신의 자손이다.
 하지만 타츠마사와 츠에베 마모루 모두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류카를 희생할 각오를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이 '지수' 로!”

 루리는 허리춤에 꽂은 칼의 입구를 자른다. 이 불멸의 검이라면 흡혈룡이 된 블라드 3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걸 얕잡아보지 마라. 이름을 열어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면, 죽이기 전에 네놈의 목숨이 다 빨려 나갈 거야”

“상관없습니다! 류카 님이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이놈의 자식아!”

 충고를 듣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는 루리를 타츠마사가 뽑아든 칼이 베어버린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