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설 - 연재/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194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NioN 2024. 12. 4. 19:46

선혈신락(鮮血神楽)③

 
 참배길로 내려가는 우리에게는 무거운 공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원인은 내 앞을 걷는 루리와 올리비아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루카를 도와주러 가고 싶었지만, 너무 분명하게 거절당하니 움직이기 힘들었다.
 나도 걱정은 되지만, 마도 인형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올리비아와의 사이는 정리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또 다른 이야기다.

“하아”

 선두를 걷던 루리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뒤돌아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역시 가볼게요.”

 그럴 줄 알았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볼 만큼 눈치 없는, 안하무인한 녀석은 없었다.

“괜찮느냐? 지시를 어기면 처벌을 면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사형도 가능하지 않느냐?”

“그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펀이엔의 충고에 루리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저는 그분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면 살아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루리와 류카 씨의 관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루리의 각오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봐, 루리. 시귀이란 어떤 마물이야? 주술사 원숭이가 조종하는 움직이는 시체랑 다른 거야?”

 언데드라면 예전에 주술사 원숭이가 조종하는 시체와 싸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혀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주술사 원숭이라는건 모르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시귀는 상처 하나에 감염되는 시체야. 나탈리아라면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겠지?”

 루리 말대로, 전생에 대한 지식이 있는 나로서는 확실히 상상할 수 있다.
 감염되는 시체라는 것은 시귀의 피해자는 시귀가 된다는 뜻이다. 전생의 세계에서는 게임이나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인데, 상처 하나로 감염된다면 그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부류일 것이다.

“그래서 반쪽짜리 전력으로는 시귀를 늘릴 뿐이야. 우리 우라토 수호자는 시귀에 대한 대처도 익숙하지만........”

“그럼 동행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겠군”

“하아!”

 루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전혀 의외의 일이 아닐 것이다.
 루리에게 루카 씨가 생명의 은인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마음은 나도 잘 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나와 올리비아의 관계를 진전시켜준 빚이 있다.

“나탈리아가 간다면 나도 갈 거야!”

“아가씨, 상처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어요. 생명이 있는 인간에게는 너무 위험합니다”

 상처를 입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된다면, 긁힌 상처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아무리 올리비아가 강하다고 해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시체가 된 올리비아를 보고 싶지 않아.

“펀이엔, 아가씨를 데려다 줄 수 있겠소?”

“응, 맡겨라”

“어, 잠깐, 펀이엔! 내려줘!”

 펀이엔은 올리비아를 어깨에 업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올리비아를 힘껏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펀이엔 밖에 없으니까, 잘 됐구나.

“클라릿사도 아가씨와 함께 돌아가세요. 에이미 씨도........”

“말하지 않아도 갈겁니다. 올리비아를 달래줄거니까요”

“부탁합니다.”

 에이미는 빠르게 달려가 펀이엔을 따라잡고 올리비아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역시 절친이구나. 올리비아 일은 에이미에게 맡겨두면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저기, 나탈리아? 와도 된다고 한 적 없는데. 감염되지 않아도 시귀는 인간형 마물치고는 힘이 강한 편이고,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잖아.”

“친한 친구잖아. 위험으로 가는 길에 동행이라도 해줘.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고생만 하고 끝날 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예년보다 시귀가 많은데 류카 씨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이미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럼 갈까? 나는 장소를 모르니, 선도를 부탁할게. 일단 우회할까?”

 직진해도 진쿠로와 마주칠 뿐이니, 옆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것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 알았어. 그럼 최소한 얼굴은 숨겨 두어야지.”

 루리는 그렇게 말하며 수납공간에서 꺼낸 가면을 쓴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만든 토끼 가면이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었구나, 그거.

“그래. 나도 한 번 써볼까?”

 나는 루리를 따라 유카타를 벗고 환영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유카타를 벗는 동시에 수납공간에서 꺼낸 평소 입던 메이드복과 예전에 사용하던 가면을 재빨리 착용했다.

“바니문&실버불렛이 부활했네”

“그 이름 기억하고 있었어?”

 하지만 뱀파이어 루카 씨를 구하러 가는데 내 가명이 실버 불렛이라는 건 아이러니하네.

“그래, 하지만 따라오지 못하면 두고 갈게!”

 그렇게 말하면서 루리는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상급이다. 마도 인형의 건장한 다리, 보여 줄게.




 밤길을 걷는 펀이엔과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에이미.
 펀이엔의 어깨에 업혀 있는 올리비아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탈리아를 쫓아다니며 난동을 부렸지만, 에이미에게 달래서인지 지금은 얌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성실하게 말했다.

“나 같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나탈리아는 또 혼자서 무모한 짓을 하려고 하니까.......”

“그게 나탈리아 씨의 나쁜 점인 건 알지만, 이번만큼은 참아줘요”

“동감이다. 상처 하나에 감염되어 시체가 되는 건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야. 게다가 이 상태로는 평상시처럼 싸울 수도 없잖아”

 펀이엔의 말대로, 익숙하지 않은 유카타로는 평상시처럼 움직일 수 없다. 방금 전은 방심했던 순간이 우연히 잘 된 것일 뿐, 전투가 반복되고 길어지면 그만큼 장비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애초에 유카타만 입고 전투에 나서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몬스터의 소재나 희귀 금속을 사용한 장비와의 차이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건 그렇지만 나탈리아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나도 나탈리아를 소중히 여기고, 류카를 위해서라도 싸우고 싶은데 ......”

“위급한 상황에서 싸우지 못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는 것만이 힘이 아니고, 절대적인 가치도 아니다. 답답함을 견디고, 믿고 기다리며 다음 기회로 이어가는 것도 힘이다”

 펀이엔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중얼거린다.
 수많은 인간 종족보다 한두 수 위인 용인족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심정을 알 수 있을까, 에이미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깜짝 놀랐다.

“오래 살다 보면 여러 가지가 있는것이다”

 에이미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펀이엔은 살짝 뒤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 지금 나탈리아가...”

 올리비아의 진지한 목소리에 펀이엔도 에이미도 클라릿사도 모두 시선을 돌렸다.
 주종관계, 혹은 연인 사이의 유대감을 감지한 것일까.

“옷을 벗은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진짜로?”

 에이미는 잠시라도 진지해진 것을 후회했다.

“저기...”

“뭐냐?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리 범상치 않은 펀이엔의 목소리에도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이미 포기했어. 나, 하하하.......”

 뭔가 걸리는 말투에 에이미와 펀이엔은 다시 한 번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아카네와 에리카가 없어.”

 이어지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분명 맨 뒤에 따라왔어야 할 아카네와 에리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데려다 줄게.”

“좋아, 클라, 보내주자.”

 달려 나가려는 클라릿사를 올리비아가 제지한다.

“왕, 괜찮아?”

 무리의 서열을 절대시하는 클라릿사에게 있어서는 서열 1위인 나탈리아의 지시를 이유도 없이 마음대로 어긴 두 마리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리의 최상위인 올리비아가 허락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아카네도 에리카도 나보다 나탈리아를 더 소중히 여기니까. 어쩔 수 없지.”

 올리비아는 두 마리가 향하고 있을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다.
 
 


미르 “나탈리아의 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