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설 - 연재/탑의 마도사

<26화> 탑의 마도사

NioN 2024. 11. 1. 14:42

제 26 화 귀족의 사정

 
 린이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유벤이 찾아왔다.
 오늘도 유벤이 우회적으로 신분 격차를 부추기고 린이 받아넘긴다는 구도가 이어졌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당신이 알 수 있을까?”
 
“아니,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신분이야”
 
“아, 그래”
 
“나는 테스엘라 씨가 주최하는 다과회에도 불려간적 있어요. 당신이 공장에서 악착 같이 일하는 동안에도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요. 뭐 이것도 내가 제대로 된 신분이니까. 당신과는 다르게”
 
“거 참. 부럽네”
 
“당신은 누군가 미래를 기대해 주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 그런 사람은 없는데”
 
“그렇겠지요. 저는 당신과 달리 여러 사람에게 기대의 말을 듣고 있고, 케일리아 교수는 전망이 좋다고 했고 쟈누르 씨는 제가 다른 아이들보다 기억력이 빨라서 기대된다고 했어요”
 
“네네. 넌 모두에게 사랑 받고 정말 인기가 많구나”
 
 그렇게 말하자 유벤의 얼굴이 살짝 흐려지며 고개를 숙였다.
 
(어, 어라?)
 
 린은 조금 의표를 찔렸다. 유벤의 이 반응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였기 때문이다. 일단  빈말 반, 싫은 소리 반으로 말했다만, 뭔가 지뢰를 밟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린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입술 끝을 깨물고 있다.
 
“인정 받지 못하면 의미없어”
 
 그녀는 저주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떄까지 입을 다물었다. 린도 뭐라고 말을 걸아야 할지 몰라 묵묵부답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린은 완전히 소모된 채 도네즈미의 둥지로 향하는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그는 오늘도 많이 유벤을 따라다녔다. 최근 그녀는 반이나 도서관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질리지 않고, 린의 학원 밖 일도 관리하려고 했다. 자기 방에서 얼마나 예습했는지 알아내다가. 이어 그 내용에 거짓이 없는지 꼼꼼히 질문하고 심문했다. 린은 그녀를 만나는 동안 법원에 출두한 용의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린은 그녀를 속이기 위해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모순된 점이 있다면 엄하게 심문해 비난 받았다.
 
“유벤, 내가 꾀부리는거 이제 알았어? 왜 그렇게 날 감시하는데?”
 
“평등을 위한거야. 학원은 평등을 모토로 하고 있어. 당신만 도망치다니 용서 못해”
 
“평등을 위해서라니... 너는 도망과 불평등의 화신 같은 존재잖아”
 
“그런가요? 그럼 뭐죠.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주장을 바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젊었을 때 노인을 우습게 보던 놈도 노인이 되면 젊은이를 때릴거고, 뇌물을 받은 정치인도 실각하면 부패한 놈들을 비판하잖아요. 그런거에 대해서『네가 말하지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한테 그런 말은 씨알도 안먹히니까요. 빠져나가는 놈을 보면 비난하고, 불평등한 취급을 받으면 항의하죠.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예요. 반론은 인정하지 않을거예요”
 
 린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약간의 노이로제가 오고 있었다. 자기 방에서 조차 책을 열 때마다 유벤의 그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의를 줄까봐 두리번 거리곤 했고, 잠깐 책장을 넘기면 또 유벤이 주변에 없나 주위를 살폈다.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불안해졌다.
 린이 『도브쥐의 둥지』로 돌아가자 테오는 이미 돌아와 있었다. 촛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다.
 
“오우, 어서와” 테오가 말을 걸어온다.
 
 린은 테오를 배신자를 보는 듯한 지독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뭐야?”
 
“넌 좋겠다~. 자유롭게 책도 읽을 수 있고”
 
“너와 달리 액운이 따르지 않으니까” 테오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린은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저기, 테오. 유벤 말인데......”
 
“왜 그래?”
 
“좀 머리 아파 보이지 않아?”
 
 테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늦었어. 이제야 알아차렸냐? 내가 오래전부터 말했잖아”
 
“그러네. 네 말이 옳았던 것 같아. 그녀는 말도 안되는 불합리의 신이야.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에 눈이 멀어 그녀의 스토커 기질을 간파하지 못했어”
 
“너도 여자한테 약하구나”
 
“야, 테오. 유벤은 정말 귀족이야?”
 
“......무슨 의미야?”
 
“내 고향은 외진 곳이었지만 그래도 영주님은 어렸한 귀족 계급이였고, 그 아이들도 품위가 있었어. 유벤보다 더 예의 바르고 말이야. 귀족이라도 행실이 나쁜 놈들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음~ 그래도 그 이전에 유벤 같은 경우는 뭐랄까...... 여유가 없다고 할까. 신분에 너무 까칠한거 아니야?”
 
“그렇네”
 
 테오는 팔짱을 끼고 조금 생각하는 내색을 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너무 그렇게 남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 하는건 좋아하지 않지만, 너에게라면 이야기 해도 될 것 같아. 딴소리 하면 안돼”
 
“응”
 
“유벤은 귀족이지만 귀족이 아니야”
 
“? ...뭔 소리야?”
 
“그녀의 아버지는 평민 계급이야”
 
“뭐!? 그럼......”
 
“그녀는 평민 계급의 아버지와 하급 귀족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어중간한 귀족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린은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 테오와 그녀 사이에서 오갔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본명인 유벤투나라는 우리나라 말로는 귀부인이란 뜻으로 그녀의 아버지 스노르바가 『진짜 귀부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준거야. 스노르바는 광산 경영으로 때려 맞춘 벼락부자야, 게다가 갈레트가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 처음에는 그들의 결혼은 갈레트가에서 인정 받지 못했지만,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던 남자아이가 일찍 죽어버려서 유벤 이외에는 갈레트 가문의 핏줄을 이을 사람이 없어졌어. 게다가 불황(不況)의 여파로 갈레트 가문의 재정이 기울어졌어. 갈레트 가문은 스노르바의 경제력과 유벤의 혈통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거지. 현재로서는 일단 유벤은 갈레트 가분의 정식 후계자인 것으로 되어 있어. 하지만 아직 그 입장은 불안정해. 스노르바가 평민 계급임을 근거로 유벤을 갈레트 가문의 정통 후계로 인정하지 않는 놈들 때문에 말이지. 그것들이 국내의 상급 귀족과 유벤투스가 결혼하지 못하도록 획책(画策 : 어떤 일을 꾸미거나 꾀함)한거야. 게다가 정작 스노르바가 갈레트 가문보다 신분이 낮은 집안, 즉 하급 귀족 이하에서 온 혼담을 모조리 거절하는 형편이야. 그래서 유벤에게는 그 나이가 되서도 약혼자가 없지. 보통 유벤 정도 되면 웬만한 귀족 자제들은 약혼을 하는데. 스노르바는 고위 귀족이 되고 싶어 해.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의 상급 귀족과 이어질 수 밖에 없지. 유벤에게 마도사의 재능이 있던 건 스노르바에게 요행이었다고 생각해. 이 탑에서 유벤이 외국 귀족과 맺어지면 상급 귀족의 길이 열릴 테니까”
 
“그랬구나”
 
“예전에, 나와 유벤은 자주 같이 놀던 사이였어. 스노르바와 나의 아버지는 사업 동료로 자주 함께 일하셨으니까. 그런데 귀족 계급이 되자마자 갑자기 서먹서먹 해져서 말이야. 뭐 그건 괜찮은데, 유벤이 변해버렸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왈가닥인 느낌이 있었지만 결코 상대방의 신분을 보고 태도를 바꾸는 그런 아이는 아니였어. 한지만 언젠가부터 신분을 코에 걸고 다니고 눈에 띄게 도도해져 갔어. 그 아버지 대체 무슨 교육을 한거야?”
 
(그런 사정이......)
 
 
 
 그날 밤, 린은 침대에서 뒹굴며 유벤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인정 받지 못하면 의미 없어——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이상하네. 이곳에 와서 나는 생각만 하고 있어)
 
 케어레에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한밤중, 잠자리에서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이곳보다는 훨씬 더 아늑한 마구간 같은 곳에서 잠을 잤지만 그래도 밤에는 푹 잘 수 있었다.
 
(그만두자. 귀족의 사정 따위는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겠지”
 
 린은 몸을 뒤척이며 머릿속에 든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의 머릿속에서는 테오와 유벤이 하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아서 그의 편안한 잠을 계속 방해했다.
 
 
 
                  다음화, 제 27화「커넥션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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