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설 - 연재/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203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NioN 2024. 12. 6. 20:00

선혈신락(鮮血神楽)⑨

 
 

 저기, 방금 들었어?

 뭘?

 모두 함께 올리비아님 곁으로 돌아간다고.
 예전의 나탈리아 씨라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도와주겠다고 했어.
 올리비아님과 인연을 맺은 덕분이야.

 아, 그래.
 그 덕에 이쪽은 실연을 당했어.
 당신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렇게 기뻐하는 거야?

 나탈리아씨가 선택한 결과잖아.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모르겠어.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제일 좋은 거잖아.

 에리카는 아직 모르겠지.

 ......역시 난 당신이 싫어요.






 제일 먼저 날아오른 나에게 용의 세 개의 목이 시선을 돌렸다.

 인형 모드 기동.
 조건 설정.
 상황 파악.
 상황 대처.

 정면에서 크게 벌어진 턱이 다가온다. 만약 잡히면 탈출이 어려울 것이다. 턱을 간신히 피하고, 그 옆구리에 블랙호크를 쏘아 넣는다.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옆을 비집고 올라간다. 이어 달려드는 두 마리의 머리를 긁어내며 푸른 마력의 먼지 궤적을 그린다.
 서로 엇갈려 블랙호크와 화이트 바이퍼로 가볍게 견제하며 자신에게 계속 증오를 겨누고 있다.
 세 개의 목이 차례로 다가오고, 마도 인형의 파악력과 처리 능력으로 간신히 막아낸다.

 하지만 마력으로 만들어진 용의 목에 정해진 길이 따위는 없고, 블라드 3세의 마력이 지속되는 한 계속 늘어난다. 내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용은 목을 더 길게 뻗어 쫓아온다.

 송곳니를 내밀어 용의 눈알을 향해 화이트 바이퍼를 쏘았다. 하지만 역시나 상대는 마력의 덩어리일 뿐이다. 다른 부위보다 연약한 것도 아니고, 상처를 입어도 금방 재생되었다.

 피한 뒤에는 또 다른 머리가 노린다.
 크게 벌린 입 안에 블랙호크의 방아쇠를 당긴다. 폭발탄이 입안에서 터지면서 충격으로 내 비행에 제동이 걸렸고, 용의 목은 연기를 내뿜으며 뒤로 젖혀졌다.

 케라이노의 추진기 출력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고 마력 분사로 급발진한다.

 그 앞에는 당연히 용의 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물기만 하면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피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의 시선 끝에서 용은 목구멍 안쪽에서 빛을 발했다.

“이거나 먹어라!”

 지하 동굴이 붕괴할 때 저장 공간에 삼킨 낙석을 연금술로 한 덩어리로 만들고, 저장 공간의 형태를 바꾸어 억지로 밀어내어 발사했다.
 용이 내뿜는 섬광과 거석이 충돌하며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하는 먼지와 자갈이 온몸을 덮쳤고, 살짝 뚫고 나온 가느다란 빛이 팔과 켈라이노의 한쪽 날개를 베어냈다.
 균형을 잃은 몸이 중력에 끌려 내려오며 원뿔 모양으로 추락한다.

“큭!”

 양 날개를 크게 벌리고 추진기에서 마력을 분사해 자세를 잡지만, 낙하를 멈추는 정도에 그쳐 상승에는 이르지 못한다.
 정체된 나를 향해 세 개의 목이 가차없이 공격해 온다. 이 날개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는 회피도 불가능하다.

“계획과 달랐지만, 할 수 있겠어?”

 내 말과 함께 지상에서 폭음이 울려 퍼진다. 시선을 돌리자 아카네는 옆에서 거대하고 날카로운 주홍색 덩어리를 만들었고, 에리카는 등에 만개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한 일은 시간 벌기였다.
 우선 두 마리가 용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의 큰 기술을 쏘기 위해서.

“!”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주홍빛을 띠는 것은 표면을 특수 금속으로 덮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네가 쏘아 올린 화살촉 모양의 그것은 용의 목을 정면으로 관통해 박살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에리카의 등에 피어난 꽃잎은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포효와 함께 흩어져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날아오른다. 칼날의 회오리바람이 용의 머리를 휘감아 칼날을 갈아내듯 깎아내려 버렸다.

 다음은 내 차례다.
 블랙호크와 화이트 바이퍼를 수납공간에 던져 넣고 레드 쿼슬리를 꺼낸다.
 충전이 완료되었다.
 휴대용 총기치고는 긴 총신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마력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동시에 용의 입에서 동질의 빛이 뿜어져 나와 양측이 격돌했다.
 강렬한 반동에 온몸이 삐걱거렸다. 총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듯, 거칠어진 팔로 총신을 힘껏 누른다.
 마도핵이 만들어내는 마력은 한쪽 끝에서 레드 쿼슬리로 보내지만, 여전히 격류와 격류의 경쟁은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상대는 마력 그 자체. 그 거대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

 밀리는건가. 젠장.

 속으로 욕을 내뱉는 순간, 시야 끝에 숲 속을 달리는 에리카의 모습이 보였다.
 에리카는 일직선으로 숲을 가로질러 용의 뿌리로 뛰어내렸다.
 지하 동굴이었던 큰 구멍에서 기어 나온 용은 두 앞다리를 구멍 가장자리에 찔러 넣었다.

“샤아아아아아아!”

 입을 크게 벌린 에리카는 용의 앞발목을 물어뜯어 온몸을 비틀어 찢어버렸다.
 마력의 덩어리이기에 통증은 없겠지만, 질량으로 지탱하고 있는 만큼 그것을 무너뜨리면 자세도 무너질 것이다.

 용의 거대한 몸이 기울어지고, 그 탄력으로 적대감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레드 쿼슬리가 뿜어내는 빛이 마지막 용의 목을 삼키며 소멸시켰다. 뚫고 나온 빛이 밤의 어둠을 가르고, 이내 가느다란 눈 깜빡임으로 사라졌다.

“잘했어, 에리카”

 마력을 다 써버린 나는 에리카를 칭찬하며 떨어졌다. 케라이노가 뿜어내는 마력도 극히 일부분으로, 지금 올려다보는 별빛보다 더 덧없다. 이것으로는 추락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역할은 다 했다.
 마무리는 네가 맡기겠어, 아카네.
 잘해라, 루리.
 두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며 나는 숲 속으로 떨어졌다.






 세 개의 목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카네는 흙 마법으로 땅을 폭파시켜 그 충격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중앙의 목에 강철 실을 날려 끝이 달라붙자 빠르게 올라가 목의 단면까지 도달했다.
 그곳에서 아카네는 미리 준비해둔 실을 단면으로 던져 넣었다.
 실구슬은 투망처럼 퍼져 목의 단면을 덮었다. 좌우의 목에도 똑같이 실을 던져 단면에 그물을 쳤다.
 그리고 연결된 실에 마력을 흘려보내고, 물질화된 마력으로 그물의 눈을 완전히 막았다. 이는 나탈리아가 강철 실로 마력 농수(籠手)와 마력 구족(具足)의 형성을 보조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이렇게 단면을 봉쇄하여 용의 재생을 방해하는 것이 나탈리아가 생각한 작전이었다.

"사천에 흐르는 길이 되어, 수천수로(水天走路)"

 루리의 영창으로 마법이 발동했다. 발밑에서 물이 솟아나와 완만한 사선을 그리며 하늘로 뻗어나간다.
 한 걸음 내딛으면 물은 마치 대지처럼 단단히 발을 받쳐주었다.
 이 마법은 이름 그대로 물로 만들어진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다.
 목표는 용의 심장부. 한때 자신을 구해준 사랑하는 주인님을 위해.

 물길을 달려 올라가는 루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전의 성공을 예감한 에리카는 용의 발밑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이 숲에 시체를 넘쳐나게 한 원흉이라는 사실을 모두들 잊고 있었다.

“샤!”

 용의 앞발에서 마치 물속에서 떠오르듯 시귀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슬금슬금 기어나온 시귀들은 천천히 일어나 신음소리를 내며 에리카를 향해 달려간다.

“아아”

 시귀의 움직임은 느리다. 사람보다 힘이 세고 고통에 겁을 먹지 않지만, 그 분명한 약점은 공격하기에 충분하다.

“샤앗!”

 다가오는 시귀를 에리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용해액과 촉수의 갈고리 발톱으로 쓰러뜨린다. 진화한 에리카에게 시귀 따위는 그저 잡몹 이하였다.

 하지만 어찌됐든 숫자가 많다. 도중에 산발적으로 마주칠 뿐이었지만, 이제는 눈앞에서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지금 에리카는 큰 기술을 사용한 후 피곤한 상태인데다, 함께 따라갈 상대도 없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시체귀신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샤, 샤샤 ......”

 에리카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시귀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만반의 상태였다면 쉽게 섬멸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샤아아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카는 용기를 내어 등 뒤에서 수많은 씨앗을 날려보낸다. 씨앗은 공중에서 싹을 틔우고 입을 가진 육식식물이 되어 시귀에게 달려들었다.
 육식 식물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로 무사의 머리를 베어 먹어치우고, 무사가 쓰러지기 전에 다음 타깃으로 이동한다.
 이 정도면 상당수를 줄일 수 있겠다 싶을 때쯤, 쓰러져 가는 시귀 무리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우라토 츠에베 마모루와 계약을 맺고 죽은 뒤에도 생전의 기술을 유지한 시귀 무사들이었다. 시귀 무리 속에 숨어있던 그들은 에리카가 만든 틈을 기회로 여기고 손에 든 백칼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