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혈신락(鮮血神楽)⑫
루리가 류카와 대치하고 있을 때, 용의 뿌리에서는 에리카가 시귀 무리에게 둘러싸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진화를 통해 강해진 에리카는 지친 데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무리 속에 섞여 있던 시귀무사들은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포위망을 뚫고 나와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휘두르는 백날에 에리카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머리 위로 쏟아진 바위 덩어리와 아카네의 송곳니가 시귀 무사를 모두 쓰러뜨렸다.
“!”
“샤앗!”
착지한 아카네가 정신을 차리자, 에리카는 힘찬 목소리로 응수한다.
하지만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곤경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주위가 시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시귀 떼와 등을 맞대고 마주했다.
순간, 저 멀리 머리 위에서 '생명 그 자체' 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솟구쳤다. 여파로 인한 공기의 흔들림과 함께 용의 거대한 몸체가 크게 기울어지며 마력으로 만들어진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루리가 목적을 달성했다는 증거였지만, 에리카 일행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주변의 시귀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용의 붕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샤앗!”
에리카는 턱을 크게 벌려 시귀를 잡아먹고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했다.
“!”
하지만 갑자기 아카네가 에리카에게 몸을 날려 날려버렸다. 이전의 체격 차이는 둘째 치고, 진화한 지금의 아카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시, 샤. 샤........! 샤-”
쓰러진 에리카가 고개를 들어 항의의 목소리를 내자, 눈앞에서 용의 거대한 팔이 휘둘러져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를 박살냈다.
“!”
커다란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온 가늘고 붉은 다리.
팔이 더욱 짓누르듯 밀어붙이면서 갈라진 땅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아카네에에에!”
수풀 속에서 마침내 도착한 나탈리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에리카 일행이 있던 곳은 지하 동굴 바로 위였다. 그 지반이 무너지면 아래에 있는 독 늪으로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나탈리아의 외침도 공허했고, 아카네는 땅이 무너지며 흙덩어리와 함께 독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놓아줘, 에리카! 아카네가! 아카네가아아아!
“샤, 샤앗......”
더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구멍을 향해 달려가려는 나탈리아를, 기어오르는 에리카가 억지로 붙잡았다.
평소의 나탈리아라면 아무리 진화한 에리카라 할지라도 강제로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마력이 고갈되었다는 뜻이고, 구멍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증거였다.
통곡하는 나탈리아의 눈앞에서 원흉인 사룡은 마력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루리를 품에 안은 류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앞은 밤의 어둠보다 더 어두컴컴했다.
“아니야! 루리! 루리!
아카네를 삼킨 독 늪으로 통하는 구멍이 크게 입을 벌리고, 그 옆에서 움직이지 않는 루리를 안은 류카가 울부짖고 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그저 류카를 구하러 온 것뿐인데.
왜 아카네가 죽어야만 하는 거야?
왜 루리가 죽어야 하는 거야?
겨우 내가 자기 희생을 그만두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죽는 거야.
아카네가 에리카를 감싸는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루리, 나한테는 올리비아의 마음을 직시하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류카를 울게 하고 있잖아.
너희들, 장난치지 마.
왜 그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거야?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이를 악물고 참는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지금도 내가 그 입장이라면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불현듯 류카의 몸에서 흔들리는 인광이 솟아오르며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
“류카, 그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어.”
“...... 당주 님”
인광의 목소리에 류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 인광은 츠에베 마모루인 것 같았다.
“목숨이 거의 다했지만, 구할 방법은 있다. 너도 알고 있겠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건!
“타츠마사, 우리들은 적어도 류카가 편히 죽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역효과가 났어. 살아남았으니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겠다. 게다가 내 반신만 베어버린 솜씨는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지.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기던 녀석이 이렇게 제대로 죽을 수 있었지”
목소리를 높이는 타츠마사를 츠에베 마모루가 제지한다.
츠에베 마모루의 몸은 바람에 꺼져가는 불처럼 휘몰아치며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끝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류카, 각오가 되어 있느냐...... 묻지 않아도 되겠지?”
츠에베 마모루의 말에 류카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라.”
츠네베 마모루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류카는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어!”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광경에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류카는 그대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루리의 목을 물어뜯었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린 자는 뱀파이어가 된다'는 말은 너도 들어봤을 거야.”
내 옆으로 다가온 타츠마사가 말했다.
“그건 그냥 피를 빨아먹는 게 아니야. 흡혈과 동시에 흡혈귀의 피를 흘려보내는 거야.”
“피를 흘린다고?”
흡혈과 정반대의 행위에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대상의 몸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빨아먹는다고 해서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피는 생물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력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생명의 상징이다.
뱀파이어는 피를 매개로 마력 조작에 능한 종족이다.
피를 빨아먹는 것은 마력과 생명력을 흡수하는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피를 흘리는 것은 상대의 마력과 생명력을 접하는 것과 같다.
그것들을 동시에 함으로써 상대와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고, 상대의 몸을 변화시킨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흡혈귀의 생명력을 깎아먹는 데다 연결한 생명은 대상이 흡혈귀가 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도 죽게 된다. 생물로서의 번식 방법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흡혈에 의한 동족화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타츠마사는 설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마력으로 다시 만들어낸다고 .......”
마치 연금술 같다.
어쩌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그랬을까.
동쪽 하늘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무렵, 류카는 루리의 목덜미에서 입을 떼었다.
“루리......”
“...... ㄹ, 류, ㅋ, 카, 님.......?”
루카의 물음에 루리는 끊기면서 대답했다.
류카는 이전과는 다른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루리를 꼭 껴안았다.
“어떻게든 잘 견뎌냈구나. 다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어”
그렇게 말하며 지네베 마모루는 무너져 내렸고, 공중에 떠 있던 인광의 조각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하늘에 녹아 사라졌다.
이렇게 해서 우라토 가문이 안고 있던 인연은 결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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