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설 - 연재/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224화> 메이드 인형 시작합니다

NioN 2024. 12. 13. 20:11

흑갑주 유린

 
날씬한 검은 갑옷. 등 뒤로 뻗은 한 쌍의 날개는 푸른 인광을 발산한다.

 오른손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저격총. 왼손에는 압축된 마력으로 형성된 마력 칼날.
 그 마력검으로 프레드가 양팔로 움켜쥔 검을 가볍게 받아내고 있다.

“뭐야, 너는! 연합군인가!

 프레드의 외침에 검은 갑옷은 무심한 듯 숨을 내쉬며 오른팔에 쥐고 있던 저격총을 들어올렸다. 허둥지둥 몸을 비틀던 프레드의 옆구리를 총알이 관통한다. 피하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의 배에 바람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거리를 벌린 프레드가 검을 다시 잡는 동안 검은 갑옷은 저격총을 수납공간에 넣었다. 대신 손에 빛이 모여 한 자루의 권총을 형성했다.
 총구가 프레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압축된 마력의 총알을 발사한다.

“역시! 너, 환생자잖아! 그럼 적대할 이유가 없잖아!”

 프레드는 총알을 피하며 외친다. 아까의 저격으로 예감은 했지만, 총이라는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흑갑옷이 자신과 같은 이세계에서 환생한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흑갑옷 역시 프레드의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환생자지만, 네 편이 될 이유도 없다.”

 흑갑옷은 프레드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프레드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기세가 꺾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격을 막으면서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호소한다.

“나는 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싶어! 문명은 뒤쳐져 있고, 나라는 여전히 왕과 귀족이 지배하고 평민들은 고통받고 있다! 위험한 마물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환생자의 역할이 아닌가!”

 프레드의 말대로 그가 전생에 살았던 나라에 비하면 이 세상은 미숙할 것이다.
 마법 기술은 있지만, 문명은 수백 년 뒤쳐져 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격차가 크고, 그것은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마물이라는 위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평화롭고 발전된 세계를 아는 환생자는 이 세계에 평화와 발전을 가져와야 한다고 프레드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흑갑옷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 너 같은 오만한 놈과 함께할 생각없다.”

 프레드의 뜻을 검은 갑옷은 오만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검은 날개가 푸른 입자를 흩뿌리며 날갯짓을 하고, 거리를 두면서도 정확한 조준으로 총알을 쏘아댄다.

“큭!”

 프레드가 날아오는 총알을 베어내고, 곧바로 돌진하여 벌어진 거리를 좁힌다.
 검에 번개가 치고 불꽃이 터진다.

“볼트레이!”

 번개빛을 머금은 검을 휘두르며 흑갑옷을 향해 다가간다.
 하지만 흑갑옷은 왼손의 마력검으로 프레드의 검끝을 피했다.

“윽!”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쉽게 빗나가자 프레드는 깜짝 놀란다. 그 틈을 흑갑옷은 놓치지 않고 총구를 들이댔다.

“너, 약하구나.”

 방아쇠를 당기는 검은 갑옷. 관통하는 총알.

“으, 아아아아악!”

 잠시 후,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들린다.
 가슴과 배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프레드를 향해 흑갑옷은 저격총을 꺼내 추격을 시도한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불타는 불덩어리가 흑갑옷의 옆을 지나갔다.
 흑갑옷이 불덩어리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니 그곳은 공화국군 진영 안이었다.

“조준이 어설프군. 아마추어인가?”

 프레드와의 전투 중에는 원호도 없었고, 제지하는 순간에도 빗나갔으며, 지금을 기준으로 한 두 번째 사격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저격에 관해서는 대단한 솜씨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당초 계획대로 그란루체 군을 궤멸시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날개를 활짝 펴고 그란루체 군의 한가운데로 향한다.




 울벤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광마법에 의한 원거리 공격과 병행한 장거리 공격은 그란루체에서도 연구되고 있었다. 여러 명의 마법사가 협력하면 가능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라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울벤트는 자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 빛 마법으로 관찰하면서 시간을 들여 강화한 화염 마법의 위력을 이 거리까지 도달시킨 것은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곧바로 두 번째 발사를 준비했지만, 그 사이에도 검은 갑옷은 다가왔다.

 다행히 프레드가 흑갑옷의 저격을 중단시킨 덕분에 그란루체군은 연합군보다 앞서면서도 어떻게든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날아오는 흑갑옷에 대해서도 그란루체군은 즉시 적으로 판단하고 진형을 정비한다. 아무리 정체를 알 수 없는 흑갑옷이라도 혼자라면 조직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흑갑옷 역시 침착하게 공격을 시작했다.
 왼손의 마력 칼날을 없애고 마총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란루체 군대 위를 날아다니며 일반 병사의 갑옷 정도는 쉽게 관통하는 마력 총알을 마총에서 쏘아댄다.

 중무장 보병의 대방패와 마법사의 결계가 총알을 막으려 하지만, 검은 갑옷은 그 틈을 비집고 총알을 쏘아댄다.
 또한 엘프 궁병과 마법사가 쏘는 화살도 마법도 고속으로 날아가는 흑갑옷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던 중 흑갑옷은 높은 마력의 수렴을 감지하고 즉시 몸을 비틀자,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얼음 덩어리가 나타나 폭발했다.
 폭발하는 얼음 덩어리를 등 뒤로 받으면서 땅에 엎드리듯 착지했다. 재빨리 거리를 벌린 덕분에 찰과상 정도에 그쳤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이 순간을 기회로 여겼는지, 강인한 드워프 병사가 도끼로 베어버렸다.
 검은 갑옷은 날개를 없애고 구르며 휘두르는 도끼를 피했다.
 헛스윙한 도끼가 내리꽂히며 땅에 큰 균열이 생겼다. 만약 맞았다면 흑갑옷도 양단했을 것이라고 병사들은 확신했다.

“흠!”

 즉시 칼날을 돌려 옆으로 휘두르며 베어버린다. 그 궤적은 이번엔 확실하게 흑갑옷을 잡아냈다.

 높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흑갑옷이 걷어 올린 도끼가 공중을 날아다닌다.

“네이노오오오오옴!”

 드워프 병사들은 무기를 잃고도 겁먹지 않고 통나무처럼 단단한 팔을 휘둘렀다.
 드워프의 힘은 수많은 인류 종족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단련된 괴력은 철조차도 비틀어 버린다. 맨손으로 주먹을 휘둘러도 갑옷 정도로는 막을 수 없는 위력이다.

 하지만 표적을 박살낼 것 같았던 주먹은 검은 갑옷의 가느다란 한 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팔 힘은 나도 자신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흑갑옷은 드워프의 주먹을 잡은 손에 힘을 모아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뼈가 부서지고, 손가락이 찢어지고,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먹이 뭉개진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드워프 병사를 흑갑옷은 얼굴에 주먹을 날려 침묵시켰다.
 흑갑옷의 주먹을 정면으로 맞은 드워프 병사의 얼굴은 움푹 패였고, 빠른 시일 내에 개인 식별이 불가능할 것이다.

 검은 갑옷이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사방에서 일제히 빛의 사슬이 다가와 사지에 얽히기 시작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마법사들이 발동한 구속 마법이었다.
 그러나 검은 갑옷이 힘을 가두자 빛의 쐐기는 삐걱거리며 균열이 생겼다.

“지극히 위대하신 빛의 신이시여, 여기에 기도를 드리지 않겠나이다. 원수에게 하늘의 심판의 빛을 내려주소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울벤트는 서둘러 외쳤다.

“무지개의 낙광!”

 시전이 완료되고 마법이 발동한다.
 하늘에서 무지개 빛이 쏟아져 내려와 검은 갑옷을 삼켰다. 고열로 인해 폭발이 일어나고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큭,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울벤트는 자신을 포함한 병사들을 결계로 여파로부터 보호하며 승리를 확신했다.
 빛이 서서히 가늘어지더니 사라졌다.
 그곳에는 구속 마법을 파괴한 검은 갑옷이 멀쩡히 서 있었다.

“웃기지마! 상급 마법의 직격에 무사할 리가 없잖아!”

“방금 한 것이 상급? 그 정도의 위력으로?”

 놀란 울벤트의 말에 흑갑옷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란루체군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리고 우수한 회복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한, 무너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 중 상당수가 전선에 복귀하고 있다.
 이에 흑갑옷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진홍색 흉기를 가슴에 품고, 망령의 무리는 유희를 반복한다.
뱀처럼 웃고, 전갈처럼 울고, 환몽을 쏘아대네.
지네처럼 사랑하고, 벌처럼 미워하고, 고통을 나누자.”

 노래와 함께 마법의 구축이 진행되었고, 그 무시무시한 주문과 넘쳐흐르는 엄청난 마력에 모두들 몸을 떨었다.
 그란루체 병사들은 이 마법을 발동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시전을 막으려 공격을 가한다.

“껍질이 벗겨진 몸과 갈라진 마음으로 소원한다. 아직 여기 있는 생명을....”

 하지만 울벤트의 고급 마법을 견뎌내는 상대에게는 악마의 발악일 뿐이었다.

"전율을 낳는 사룡(邪竜)"

 시전이 완료되자 검은 갑옷 뒤의 공간에 검은 큰 구멍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