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 꽃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아카네를 무릎에 앉혀놓고 밤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루리가 찾아왔다.
“저기, 술 좀 마실래?”
그렇게 말하면서 루리는 손에 들고 있던 도쿠리(술병)와 술잔을 들어 보였다.
레이바나의 술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막 도착한 곳에서 올리비아와 너무 떨어져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모처럼 왔으니까 다녀오도록 해”
하지만 다름 아닌 올리비아가 그렇게 말해주었기에,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루리가 안내한 곳은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정자 아즈마야(東屋あずまや)다. 이곳에서도 밤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루리가 가져온 술병과 술잔을 책상에 놓고, 내가 수납공간에서 말린 고기와 장아찌를 꺼내어 술잔을 기울일 준비를 했다.
“그럼 다시 한 번 재회를 위해 건배”
“건배”
술이 부은 술잔을 가볍게 들어 입에 가져다 댄다.
“맛있네.”
“그렇지? 우라토 가문에서 즐겨 마시는 술이야. 아, 이 소시지도 맛있네”
그리고 낮에 나누었던 수다를 다시 시작한다.
잠시 후, 술을 마셔도 인형인 나는 취하지 않았지만, 루리가 취하자 이쪽으로 끌어와 수다스러워진다.
“마리제의 배를 타고 온 거지? 와카네와 니스케는 잘 지냈어?”
“그래, 와카네는 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니스케는 사무를 도와주고 있었어. 그 두 사람이 마리제네에서 일하는 건 루리의 말단 직원인 거지?”
“그래. 예전에 조금 인연이 있어서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이라도 벌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이야”
그렇다면 그 두 사람에게 루리는 은인이라는 뜻이다.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즐거운 얘기는 아닐 것이다.
“와카네는 루리와 같은 하녀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 뭔가 열이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어.”
“마음은 기쁘지만, 그 나이에 그 정도는 아니지. 앞으로 10년, 아니 5년은 더 기다려야겠지”
“5년이 지나도 안되지 않아?”
레이바나 나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페리온 왕국 기준으로는 5년이 지나도 와카주는 미성년자다.
“그래. 올리비아 씨처럼 마음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때 생각해 볼까?”
갑자기 올리비아의 이름이 나오자, 입에 머금고 있던 술에 사레가 들릴 것 같았다. 억지로 삼킨 후 원인 제공자인 루리를 노려본다.
“너, 거기서 올리비아를 꺼내지 마”
“어, 왜냐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거의 첫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벌써 몇 년이나 됐어?”
“벌써 ...... 4년이 지났어 ......”
올리비아가 언제부터 나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올리비아에게 호감을 가졌던 건 환생한 지 2주 정도 지났으니 루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환생 후의 나이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대답하지 않았지? 그럴 마음이 없다면 제대로 거절해 주지 않으면 불쌍해”
“그건 ...... 전에 얘기했잖아 ......”
예전에 가더랜드 지하 동굴에서 식사 겸 술 마실 때 말했던 것 같다.
“다들 나와 올리비아를 붙이려고 하는데, 난 인형이야. 어디까지나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될 수도 없어. 한 쪽이 꽉 찬 사랑 따위는 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대로 헤어지라는 거지. 물론 나탈리아의 입장이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뭐? 네가 뭘 알아?”
루리의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그 한 마디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뭐야, 나도 나탈리아도 같은 입장이잖아”
“아니잖아. 나랑 너랑은 다르잖아”
나랑 똑같다고?
웃기지 마라.
“넌 전생도 지금도 여자잖아. 내 전생은 남자였고, 지금은 여자야.”
성별 정도, 이건 정말 가벼운 것이 아니다. 자의식도, 주위의 인식도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이 바뀐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게다가 넌 아직 인간이잖아?”
팔에 마력을 모아 날카로운 칼날을 구축한다. 환생 직후에 익혀서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마력 칼날이 밤의 어둠 속에서 푸른 빛으로 빛난다.
그것을 다른 쪽 팔에 대고 단숨에 베어버렸다.
나름대로 깊은 상처다. 인간이었다면 피를 뿜어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는커녕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봐라. 자르면 피가 나지 않잖아.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이 상처조차도 자동 복구 기능으로 생물의 치유보다 훨씬 빨리 낫는다.
“확실히 넌 나와 같은 환생자야. 하지만 그게 다야. 성별도 바뀌고 인간도 아니게 되어 살아 있는지조차 불안한 내 심정을 네가 알겠어?”
그렇다고 항상 그런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의 나를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옷차림도 그렇다. 여자 옷도 속옷도 내가 아닌 게임 속 아바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입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르겠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어? 처음에는 만화나 라노벨처럼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편리한 몸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받았는데, 그렇게 못되먹은 약자 소리를 할 수 있겠어!”
이건 내가 약해서 그런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이 몸이 있기에 지금도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오필리아와 약속했어, 올리비아를 지키겠다고”
오필리아가 마도 인형 나탈리아를 창조해 주었다. 내가 그곳에 환생한 건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줬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흠, 그럼 오필리아 씨 때문이구나.”
“뭐라고?”
“아니 그렇잖아. 오필리아 씨 때문에 이런 인형의 몸이 되어서 하녀로 지내야 하고, 올리비아 씨의 마음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유가 없는 거지.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 나는 ......”
“인간도 남자도 아닌 걸 알지만, 인형도 여자도 아닌 걸 알지만, 전생의 나를 지킬 각오가 없어. 전생의 나를 관철할 각오도,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각오도 없어. 결국 당신은 무서워하는 거죠.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는 것도, 전생과 지금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진지하게 사랑을 하는 것도, 올리비아 씨와 마주하는 것도, 모두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뿐이야.”
“큭——!”
즉시 부정하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루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오필리아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인형으로 남았어야 했다. 전생의 기억도, 남자로서의 의식도 버리고, 자유시간 따위는 바라지 않고 그저 사심 없이 올리비아를 섬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다 내 나약함 때문이었고, 그런 내가 싫어서, 인정하는 것조차 싫어서, 들킬까봐, 알아차리면서도 못 본 척하고, 생각 안 하려고 애쓰고, 고치고, 계속 도망쳐 왔다.
“그래요. 무서웠어 ...... 무서워서 도망쳐서 미안해 ......”
“그게 얼마나 남에게 상처를 줬을지 생각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계속 도망치면 강제로라도 마주하게 할 거야. 그렇죠, 올리비아 씨?”
루리의 시선이 옆으로 흘렀고, 나는 무심코 그 뒤를 쫓아갔다.
“엥........”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지금 가장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
왜 —
미움받는다 —
어떻게 하면 —
끝났다 —
시야가 흐려진다. 닫혀버린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리비아 ......”
나는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중얼거리고, 그리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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